최악 부른 층간소음…우리나라만 문제인가

지난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 베이비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유아 매트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일 천안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해 이웃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전했다. 문제는 층간소음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층간소음은 한국만의 특수한 사회문제가 아니다. 고층·고밀도 주거가 확산한 세계 주요 도시에서 공동주택 소음은 보편적인 갈등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같은 공동주택 소음이라도 어떤 구조가 어떤 소리를 키우는지 그리고 갈등을 제도적으로 흡수하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분쟁의 얼굴은 크게 달라진다.

 

16일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전화상담 접수가 2020년 4만2250건, 2021년 4만6596건까지 급증한 뒤 2024년에는 3만3027건으로 감소했다. 겉으로 보면 민원이 줄어든 듯 보이지만 이를 곧바로 상황 개선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실제 현장 소음측정에서 법적 기준을 초과한 사례는 2021년 41건에서 2024년 88건으로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민원 건수와 체감 갈등 사이의 간극이 여전히 크다는 뜻이다.

 

◆한국: 철근콘크리트가 키운 소리

 

한국 아파트의 주류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다. 층과 층 사이를 이루는 바닥 슬래브는 법령상 원칙적으로 210㎜ 이상을 요구한다. 구조가 단단해질수록 소음도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이가 뛰거나 점프할 때 발생하는 중량충격음은 구조체를 타고 넓게 퍼지며 둔탁한 쿵쿵 소리로 전달된다.

 

현행 기준은 직접충격소음을 1분 등가소음도 기준으로 주간 39㏈, 야간 34㏈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측정 수치와 체감 괴로움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저주파 성격의 충격음은 수치상 기준을 넘지 않아도 진동과 불쾌감을 동반해 갈등을 키운다.

 

여기에 행정 대응의 한계가 겹친다 층간소음 민원이 구청 등 행정기관으로 접수돼도 상당수는 관리사무소 전달이나 경고성 안내에 그친다. 강제 중단이나 실질적 제재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 때문에 갈등이 이웃 간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문제 해결이 장기화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프랑스: 야간 소란은 공공질서의 문제

 

프랑스에도 층간소음은 흔하다. 특히 파리 등 구도심의 오래된 주거는 내부 바닥이 목재 구조인 경우가 많아 발걸음이나 의자 끌림 같은 경량 충격음이 날카롭게 전달된다. 한국의 ‘쿵쿵’과 달리 ‘따다닥’에 가까운 소리가 일상적으로 이웃에게 전해진다.

 

차이는 대응 방식이다. 프랑스에서는 야간 소란이 명확한 질서 위반으로 인식된다. 소음이 반복되면 관리조직이나 경찰을 통한 개입이 자연스럽고 벌금 부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프랑스 형법(Code pénal)은 야간 또는 모욕적 소란이 이웃의 평온을 해치면 3급 위반(contravention) 벌금 대상이 된다고 규정했다. 소음을 이웃 간 인내의 문제로만 남겨두지 않고 공공질서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정리하는 방식이다.

 

특히 신축 공동주택의 경우 프랑스는 주거 음향 기준을 두고 이를 충족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운영해 왔다.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부터 소음 성능을 점검하고 준공 시 기준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구조다. 분쟁이 발생한 뒤 중재에 나서기보다 애초에 갈등 가능성을 줄이려는 접근에 가깝다.

 

◆독일: 기준과 계약이 갈등을 정리한다

 

독일 역시 층간소음에서 자유롭지 않다. 구주택에서는 마루 구조와 마감재에 따라 발걸음 소음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쟁이 발생했을 때 독일 사회는 감정보다 기준을 먼저 호출한다.

 

주거간 차음 성능에는 최소 기준이 존재한다. 이를 넘어서는 쾌적성을 권장하는 지침도 마련돼 있다. 위층이 카펫을 걷어내고 마루를 깐 뒤 소음이 커졌다는 이유로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은 건물 연식과 적용 가능한 기준, 충격음 측정 결과를 토대로 판단한다. 소음이 ‘불쾌한가’보다 ‘기준을 충족했는가’가 쟁점이 되는 셈이다.

 

주거간 차음의 최소 기준으로 DIN 4109(법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소 기준)가 거론되고 쾌적성을 위해 VDI 4100(쾌적한 주거를 위한 권장(고급) 기준)이 보완 지침을 제공한다는 점이 문서로 정리돼 있다. 

 

이 과정에서 충격음 전달 정도를 수치로 환산한 지표가 논의의 중심에 오르며 경우에 따라 원상 복구나 추가 보완이 요구되기도 한다. 갈등은 개인 간 감정 대립이 아니라 기준과 계약의 문제로 수렴된다.

 

지난 4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을 이유로 70대 이웃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양민준이 12일 천안동남경찰서에서 검찰 송치에 앞서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비슷한 구조·비슷한 갈등, 다른 해결책

 

앞으로 신축 공동주택이 콘크리트 중심으로 확산할수록 유럽 역시 한국과 유사한 충격음 갈등을 겪게 된다. 한국에도 기준과 제도는 있지만 문제는 집행의 무게다.

 

한 건설 전문가는 “민원이 접수돼도 실질적인 중단이나 제재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에서는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층간소음은 어디서나 발생한다. 차이는 그 소리를 개인의 인내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관리해야 할 문제로 다룰 것인지에 있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