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벌써 여섯 번째 작품으로 찾아온 배우 강하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은 매번 새롭다.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작품마다 전혀 다른 인물로 변주되는 그의 연기 결은 ‘익숙하지만 낯선 배우’라는 역설적인 수식을 완성한다. 꾸준함 속에서 변화를 증명하는 배우, 그가 또다시 자신만의 색으로 스크린을 물들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퍼스트 라이드’는 7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가을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24년 지기 친구들이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영화는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스토리 라인이지만 그럼에도 관객이 극장으로 향한다. 믿고 보는 배우 강하늘의 저력이다.
영화는 2023년 입소문을 타며 216만 관객을 동원해 깜짝 흥행한 ‘30일’의 남대중 감독의 차기작이다. 당시 호흡을 맞췄던 강하늘이 이번에도 주인공으로 출격하며 의리를 보였다. 강하늘은 “감독님과 작품을 하는 건 좋지만 늘 중요한 건 대본이다. 감독님만 좋아서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대본을 보기 전에는 할지 안 할지 모르는 것”이라며 “이번엔 대본을 봤는데 또 너무 재밌었다. 감독님도 좋은데 대본도 재밌었던 것”이라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이어 “감독님 대본에 나오는 상황들은 정말 기발해서 상상의 나래가 우주까지 간다. 상상력이 엄청 풍부해지는 기분이라 감독님 대본을 읽을 때 항상 재미있다”고 남 감독을 추켜세웠다.
항상 대본을 강조하는 강하늘에게 좋은 대본은 무엇일까. 그는 “완벽하게 쓰인 대본은 사실상 없다고 생각한다. 대본을 읽으면서 그 빈칸의 지점이 내 상상력으로 채워지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러면 재미있는 것”이라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 상상력이 잘 들어맞는 대본이 있다. 대본을 재미있게 읽으면 현장에서도 재미있다. 대본이 재밌다고 하는 건 궁극적으로 제가 참여하는 현장도 재밌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우에게는 대본뿐 아니라 수개월 간 몸담아야 하는 촬영 현장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하늘은 “저는 현장이 즐거워야 하고 재미있어야 한다. 너무 치열하고 예민하기만 한 현장일 것 같으면 사실 작품을 고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끝을 보는 놈 태정(강하늘), 해맑은 놈 도진(김영광), 잘생긴 놈 연민(차은우), 눈 뜨고 자는 놈 금복(강영석), 사랑스러운 놈 옥심(한선화)이라는 5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범상치 않은 수식어대로 각자 개성이 너무나 뚜렷한 이들이 환상의 티키타카를 주고받는다.
강하늘이 연기한 태정은 무엇이든 끝을 보는 전교 1등이자 수능 만점의 모범생 출신으로 어른이 되어서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현실적인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성 강한 친구들 틈에서 나름의 리더 역할이기도 하다. 강하늘은 태정에 대해 “독특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스탠다드한 중재자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을 할 때 에너지의 총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역할이 어느 정도 총량을 가져가면 나머지는 가만히 있거나 눈에 띄지 않는 리액션을 하면서 채워주고 맞춰주는 역할이 있다”라며 “이번에는 아무래도 다들 개성 있는 캐릭터다 보니까 태정이 중재자 역할을 많이 했다”고 떠올렸다.
지난 3월 영화 ‘스트리밍’을 시작으로 영화 ‘야당’, ‘당신의 맛’(ENA), ‘오징어게임 시즌3’(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넷플릭스) 등 올해 누구보다 열일한 배우다. 한편으로는 이미지 소모에 대한 부담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강하늘은 “그런 걱정을 안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며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작품을 많이 함으로써 너무 소진되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진짜 소진되고 식상해지더라”라며 “분명히 이제는 저를 식상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게 오히려 저한테 득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대중이 다른 역할처럼 조금은 다르게 계속 봐주실 것 같다고 믿고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1년 내내 홍보 활동과 영화 촬영에 열중했던 강하늘은 “홀가분하다”고 올해를 돌아봤다. 그는 “바로 뒤에 또 작품이 남아 있다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많아지는데 올해 ‘퍼스트 라이드’가 끝이라면 ‘올해는 이제 이걸로 끝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연말 정리처럼 조금 후련한 마음이 있다”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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