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대학로에 고 김광석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10주년을 맞은 ‘다시, 동물원’ 이번 시즌은 김광석과 동물원 멤버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포크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재조명했다.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김광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점이다. 이름 대신 그 친구라는 호명을 통해 동료이자 친구로서 기억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김창기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스타의 신화가 아닌 음악을 사랑했던 평범한 청년들의 꿈과 갈등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오랜 친구의 기일을 맞아 연습실을 찾은 창기가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되는 구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시간 여행에 동참하게 만든다.

1988년 데모 테이프 녹음부터 대한민국 포크 음악의 중심에 서기까지의 과정은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유명세와 그로 인한 갈등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두 번째 앨범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 벌어지는 멤버들 간의 의견 충돌과 결국 맞게 되는 이별의 순간은 많은 관객들에게 숙연함을 안긴다.
타 뮤지컬과 가장 큰 차이는 관객석에서부터 시작됐다. 뮤지컬 시장의 주관객층은 2040 여성이다. 반면 다시, 동물원은 대한민국 공연 중 5060, 특히 남성의 비율이 높은 작품으로 불린다. 동물원을 탈퇴한 후 홀로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다 생을 마감한 후반부 그 친구의 이야기가 나올 때 객석 곳곳에서 중년 남성들의 훌쩍임이 들린다. 검열과 탄압의 시대를 함께한 세대가 김광석에게 보내는 안타까움, 미안함, 그리움의 소리다.
동물원 원년 멤버였던 박기영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것은 작품의 강점 중 하나다. 그의 참여로 혜화동,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서른 즈음에, 널 사랑하겠어, 사랑했지만 등 동물원의 대표곡들이 더욱 생생하게 무대 위에서 재현됐다. 특히 주요 넘버들을 배우들이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는 방식은 관객들에게 더 큰 감동을 전달한다.
10주년 시즌을 맞아 선곡에도 변화를 줬다. 기존의 회귀, 동물원 등을 빼고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사랑했지만 등의 명곡을 새롭게 선보임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지난 14일 마지막 공연까지 재관람 관객이 유독 많았던 이유다.
그 친구 역에는 오승윤·한승윤·박종민이, 김창기 역에는 류제윤·정욱진·오경주가 출연하며, 유준열 역에는 김이담·장민수·정이운, 박기영 역에는 박상준·석현준·박경찬 역에는 문남권·홍은기·용삼 역에는 김성현·조훈이 무대에 오른다.


이들 중 오승윤은 재발견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불타는 장미단’, ‘복면가왕’을 통해 의외의 가창력을 발휘해 화제를 모은 그는 이번 무대에서도 수준 높은 실력을 선보인다. 오랜 시간 사랑받은 안정적인 연기력은 말해 뭐해다. 다시, 동물원을 통해 배우로서 확장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제목만 들어도 첫 소절을 흥얼거릴 수 있는 명곡 대잔치다. 싱어롱 위크는 이 작품만의 특별한 매력이자 뮤지컬 공연 형식의 변화를 알린 신호가 됐다. 이 기간은 배우가 노래를 부르면 관객도 노래를 부른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며 참여형 문화 경험을 가능케 했다. 동물원, 김광석의 음악이 가진 대중성과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시간이다. 다음 시즌에는 이런 싱어롱 위크가 더욱 확대돼 많은 관객들이 특별한 경험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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