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현대모비스에 집중해야죠.”
프로는 실리를 추구하는 냉혹한 세계다. 때마다 등장하는 ‘비즈니스’라는 건조한 단어는 상황을 단칼에 정리하지만, 그 이면엔 숨길 수 없는 씁쓸함이 끈적하게 남는다. 몇 번의 이적을 경험한 베테랑도 여전히 이별은 어렵다. 그럼에도 단단히 쌓아온 시간과 경험은 스스로를 일으킨다. 이승현(현대모비스)은 “현재는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라고 외쳤다.
첫 번째 이적은 자유의지였다. 포워드 이승현은 2014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오리온의 부름을 받았다. 첫 시즌부터 전 경기에 출전하며 신인상을 안았고, 이듬해인 2015~2016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루며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매 시즌 팀을 플레이오프로 인도해 ‘오리온의 수호신’이라 불렸다. 하지만 점점 우승과 멀어지는 모양새에 변화를 선택했다. 2022년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KCC 유니폼을 입었고, 슈퍼 팀의 한 조각으로 2023~2024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었다.
두 번째 이적은 구단의 선택이었다. 지난달 17일 KCC는 이승현과 전준범을 현대모비스로 보내고 장재석을 받는 2대1 트레이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예고된 일이었다. KCC는 올여름 FA 시장에서 최대어로 불리는 허훈을 영입했고 초과된 샐러리캡을 비워야만 했다. 정리가 필요한 상황에 이승현을 떠나보냈다. 마음 정리가 쉽지 않았다. 이승현은 “처음엔 멘붕(멘털 붕괴)이었다. 약간 멍한 느낌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마음을 다잡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승현은 현재 남자 농구대표팀에 발탁돼 8월 2025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많이 섭섭하고 서운했지만, 내가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라며 “지금은 정리됐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힘줘 말했다.
대표팀 훈련도 순조롭다. 소집 전부터 묵묵히 개인 훈련을 이어온 이승현은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동료와 합을 맞추고 있다. 그는 “(비시즌에 훈련을) 젊을 땐 더 많이 했는데 이젠 나이가 있다 보니 조금은 조절해서 하게 된다”면서 “대표팀 선수들 다 성실하고 성격이 좋아서 웃으며 재밌게 훈련하고 있다. 사실 얘들이 너무 잘 뛰어다녀서 조금 버겁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진천 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만큼, 이적을 당장 실감하긴 어려운 환경이다. 하지만 동료의 장난이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이승현은 “대표팀 선수들이 나를 보곤 ‘어~ 현대모비스 이승현~’ 이렇게 장난식으로 부른다. 현실 아니겠나”라고 웃은 뒤 “새로운 팀에서 시작한다는 설렘은 당연히 있다”고 미소 지었다.

새 사령탑과 함께한다. 현대모비스는 새 시즌 양동근 신임 감독을 선임했다. 이승현은 선수 시절 양 감독과 국가대표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는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처음엔 당연히 어색할 거다. 그럼에도 감독님은 감독님이다. 시즌 끝나고 감독님이 한번 ‘형’이라고 부르라 시키시면 할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농담하면서도 “첫 시즌을 함께하는 만큼, 그리시는 구상대로 잘 맞춰가고 열심히 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대가 되는 포인트는 한 가지 더 있다. 새롭게 만나는 동료들이다. 이승현은 “(박)무빈이는 트레이드 기사 나자마자 연락이 와선 ‘형이랑 같이 뛰게 될 줄 몰랐는데, 함께하게 돼서 정말 좋다’고 하더라. 밥을 많이 사주길 잘했다”라며 껄껄 웃은 뒤 “(서)명진이도 계약을 했고, 내년엔 (이)우석이, (신)민석이가 돌아오니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특히 기대가 되는 만남이 있다. 이승현은 시간을 거꾸로 살고 있는 함지훈과의 동침을 기다린다. 함지훈은 현대모비스의 원클럽맨이자 1984년생으로 프로농구 최고령이다. 이승현은 “같은 포지션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선배”라며 “많이 달라붙을 계획이다. 귀찮게 해서 지훈이 형의 스킬과 노하우를 다 훔칠 것”이라고 웃었다.

대표팀 소집이 해제되면 현대모비스 이승현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는 “그전엔 마음 정리가 잘 안돼서 목표에 대한 답을 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트레이드 잘했다’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며 “우승은 당연한 목표다. 전통적인 현대모비스의 색깔은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해온 농구 스타일과도 비슷할 것 같다. 잘 어우러져서 대중들이 ‘이승현은 트레이드돼서 더 잘됐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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