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4050세대 ‘덕질 어게인’…다시, 팬이 되다

4050세대, K-팝 산업 지탱하는 주춧돌로
팬덤은 확장된다 "젝스키스부터 세븐틴까지"

 #49세 직장인 김여진 씨는 매일 밤 습관처럼 방탄소년단(BTS) 관련 콘텐츠를 본다. 청소를 하며 틀어놓은 음원,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보는 라이브 클립 등 혼자 있는 시간은 항상 BTS와 함께다. 직장 스트레스, 반복되는 육아와 가사노동 속에서 김씨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말했다.

 

 #51세 주부 박지민 씨는 지난해 뉴진스에 입덕했다. 딸과 함께 서울 고척돔 공연장을 찾았다가 “많은 이들이 고통 없이 행복하길 바란다”는 멤버 민지의 무대 인사에 코끝이 찡했다. “예전 핑클 콘서트에서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는 박씨는 이후 팬카페에 가입했다.

 

 한때 아이들의 취미로 여겨졌던 팬질이 다시금 중년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10대 시절 H.O.T.와 젝스키스의 응원봉을 들었던 손길은 이제 BTS, 세븐틴, 뉴진스, 아이브를 향한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출근 전 팬캠을 챙겨보며, 퇴근길엔 팬카페 글을 올린다. 콘서트 투어를 따라다니고, 자녀보다 더 뜨겁게 굿즈를 수집한다.

 

◆중년에 돌아온 그때 그 시절

 

 4050세대는 덕질(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이 낯설지 않다. 1990년대 H.O.T, 젝스키스, 핑클로 대표되는 1세대 K-팝을 10대 시절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경험한 이들이다.

 

 H.O.T와 젝스키스 팬덤의 기싸움은 아직도 일상에서 회자한다. 세기의 라이벌로 불린 두 팀은 1997년 연말 가요대상에서 맞붙었다. 당시 시상식 전부터 공연장 밖은 난리가 났다. H.O.T와 젝스키스의 상징색인 흰색, 노란색 우비를 입은 여학생 250여명이 머리채를 잡고 패싸움을 벌였다. 해당 사건은 드라마에서 패러디될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이들이 다시 K-팝 팬이 된 2025년, 덕질의 방식은 달라졌지만 열정만큼은 여전하다. 싸이월드 대신 X(전 트위터), 팬레터 대신 팬카페 게시판, 줄 서기 대신 온라인 예매로 플랫폼은 바뀌었지만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감정은 과거 그대로다. 실제로 X와 인스타그램에서는 40대 덕질, 엄마팬, 아재덕후 같은 해시태그로 중년 팬들의 활동 계정이 꾸준히 증가 중이다.

 

 K-팝은 더 이상 열광적 소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년 팬덤의 화력이 만만치 않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이들에게 팬덤 문화는 정서적 피난처가 되고 있다. 갱년기 우울감, 직장 내 번아웃, 육아 스트레스 속에서 아이돌의 무대는 잠깐이나마 쉼표를 찍어준다.

 

◆10대의 전유물? 세대를 아우른다

 

 4050 팬덤은 K-팝이 세대공감 콘텐츠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철없는 10대의 관심사로 치부받던 팬 활동이 2010년대 이후 하나의 문화 소비로 인정받았다. 특히 1세대 아이돌의 팬 경험을 가진 4050세대는 K-팝 콘텐츠를 음악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세대 확장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일부 기획사는 중년층까지 겨냥한 브랜딩 전략을 수립하거나 이들을 위한 별도의 티켓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팬덤의 외연이 넓어지면서 K-팝은 세대를 잇는 문화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욱이 중년 팬의 구매력은 K-팝 산업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주춧돌이 됐다. 그들은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든든한 서포터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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