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석구는 자기복제가 없는 배우다. 캐릭터마다 매번 다른 생명력을 부여하며 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를 오간다. 익숙한 장르 속 낯선 얼굴. 손석구는 자신을 캐릭터화 하는 방식으로 작품에 스며든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나인 퍼즐도 마찬가지. 작품은 10년 전 미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현직 프로파일러인 이나(김다미)와 그를 끝까지 용의자로 의심하는 강력팀 형사 한샘(손석구)이 의문의 퍼즐 조각과 함께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추리 스릴러물이다. 손석구는 극 중 범인을 끈질기게 쫓는 강력2팀 형사 김한샘 역을 맡았다.
일각에서는 디즈니+ 카지노(2022, 2023) 속 오승훈 형사,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2024) 속 장난감 형사에 이어 세 번째 경찰 역을 맡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는 배우의 내공을 모르고 하는 소리. 각기 다른 이름만큼 전사도 성격도 외형도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손석구는 스스로 ‘형사전문 배우’라고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형사는 범인을 잡고자 하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게 1번 숙제다. 극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만들어서라도 찾아야 한다. 그게 없으면 캐릭터의 중심축이 없는 것과 같다”라며 “한샘의 경우 아이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미제사건을 꼭 풀고 싶었던 사람이다. 복수심이나 정의감보다는 낭만적인 이유라고 봤다”고 인물을 분석했다.

나인 퍼즐은 지난달 21일 공개 이후 2025년 전 세계 및 아태 지역 디즈니+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한국 콘텐츠 1위를 기록했다. 퍼즐로 이어진 연쇄살인이라는 소재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가 글로벌 시청자의 취향을 저격한 것. 지난 4일 공개된 11회까지 모두 웰메이드 추리 스릴러라는 평을 듣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손석구는 의외의 고백을 꺼냈다. “저는 사실 SF와 느와르물을 좋아한다. 추리 영상도 안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글을 읽는데 해독 수준이었다. 원래 글 읽는 걸 잘 못한다. 대본 보는 걸 힘들어하는 편인데 나인 퍼즐은 더 그랬다”라는 것.
의아해하는 취재진을 향해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제가 얼마 전에 뇌 활성화 테스트를 했는데 30점이 나왔다. 선생님이 이렇게 뇌를 안 쓰는 사람을 오랜만에 봤다고 하실 정도였다”며 “제가 논리적 사고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감독님한테 질문이 많았다. 그런데 또 설명을 들으니까 재밌더라. 6부까지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그런 식으로 촬영을 했다”고 특유의 솔직한 대답으로 현장의 이목을 끌었다.
손석구가 믿고 따른 윤종빈 감독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공작, 시리즈물 수리남까지 인간의 내밀한 감정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끄집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손석구는 이번 작품 선택 이유 중 하나가 윤 감독에 대한 팬심 때문이라 밝히기도.
손석구는 “만나기 전까지 감독님은 날 것의 연기를 좋아하고, 동물적인 감으로 연출을 하는 분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클래식하다. 테크닉적인 것도 중요하게 여기신다. 무엇보다 기본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더라”며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이렇게 나온 거구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테크니컬한 것들이 있었다. 윤 감독님과 작업을 하며 많이 배웠다”라고 밝혔다.

한샘은 그간 없던 형사의 외형이다. 다들 정장을 입고 화면을 채울 때, 혼자 자유로운 복장이다. 남색 비니와 코트가 시그니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한샘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설득력이 생긴다.
손석구는 “이번 대본에서 변칙적인 요소들이 가장 많이 허용되는 캐릭터가 한샘일 거다”며 “대본 속 한샘은 감정의 폭이 더 적은 모노톤의 인물이었다. 영상에선 더 쾌남으로 나온다. 감독님의 의견이다. 저 역시 연기를 하면서 본능적으로 이렇게만 갈 순 없다고 판단했다. 리액션을 할 때 무게감을 가져가되 화낼 땐 더 화내고, 의심할 땐 더 감정을 표현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질투도 허당미도 있는, 앞에 뭐가 있으면 바로 바로 해결해야하는 쾌남으로 설정했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1인 기획사 겸 제작사 스태넘을 운영하는 대표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단편영화 밤낚시를 극장 개봉했다. 올해는 우리 회사의 첫 장편 영화 베드포드 파크가 공개될 예정”이라며 “올해 초 미국 인디 영화 제작사와 협업한 작품이다. 대본 단계부터 참여해 기획·투자까지 거의 2년간 준비했다”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진행 중인 작품이 마무리되는 대로 휴식기에 들어가겠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손석구는 “지금까지는 흡수를 하는 시기였다. 이제는 흡수한 것을 의미있게 보여드릴 시기라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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