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의눈] BLM 운동하는 리그 팬들이 ‘아시아인 혐오’ 하는 아이러니

[스포츠월드=김진엽 기자] ‘21세기 지구촌에서 온라인 인종차별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홋스퍼 공격수 손흥민(29)이 인종차별 피해를 봤다. 그것도 박지성(40)이 7년 동안 활약하며 국내 축구팬에게 좋은 기억이 있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 팬들에게 당했다.

 

 토트넘은 12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에 위치한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맨유와 2020∼2021 EPL 31라운드를 소화했다. 경기는 홈팀의 1-3 패. 토트넘은 졌지만 손흥민이 52일 만에 득점포를 가동하면서 2016∼2017시즌 개인 통산 한 시즌 정규리그 최다골(14골)과 타이를 이뤄 선수 개인에게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인종차별로 훼손됐다.

 

◆개고기나 먹으라고?

 손흥민은 맨유전 전반 33분 상대 미드필더인 스콧 맥토미니와 경합을 하다 얼굴을 가격당해 쓰러졌다. 이 장면 이후 폴 포그바를 거쳐 에딘손 카바니의 마무리로 맨유의 선제골이 터졌다. 하지만 주심은 VAR(비디오판독시스템)을 거쳐 손흥민과 맥토미니가 충돌한 상황에서 반칙이 나왔다고 판정을 내리면서 득점이 취소됐다.

 

 이에 화가 난 맨유 팬들은 손흥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찾아가 “개고기나 먹어라“, “DVD나 팔아라” 등의 인종차별적인 댓글을 남겼다. 개고기는 한국인을 비하하는 단어고 DVD는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표현이다. 설상가상으로 아시아인을 대놓고 깎아내리는 원숭이 이모티콘까지 달았다.

 

 이를 본 토트넘은 구단 공식 채널을 통해 “우리 선수 중 1명이 혐오스러운 인종차별을 겪었다. 구단은 EPL 사무국과 함께 조사를 거쳐 가장 효과적인 조처를 할 것이다. 우리는 쏘니와 함께할 것”이라고 공식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인종차별은 지구촌의 문제다. 이를 막기 위해 축구 최상위 기구인 국제축구연맹(FIFA)은 ‘Say No to Racism’(인종차별에 반대)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앞장서서 인종차별 반대를 외치고 있다. EPL에서는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한창이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뜻을 지닌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으로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한쪽 무릎을 꿇는다. 지난해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백인 경찰관에 의해 사망한 사건 이후 사회 곳곳은 물론 스포츠계에서도 BLM 운동이 벌어진다.

 

 이런 BLM 운동을 하는 리그에서 아시아인 혐오가 팽배하다. 손흥민 역시 맨유전 킥오프 전에 한쪽 무릎을 꿇고 인종차별 반대 퍼포먼스를 했다.

 

 또 앞서 손흥민은 EPL 선수들을 향한 온라인상의 인종차별이 성행하자 차별과 증오에 맞서는 의미로 소속사 ‘CAA 베이스’와 함께 일주일간 SNS 사용을 중단한 상태다. 손흥민의 SNS 팔로워 수는 약 480만명이기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행보였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있는 손흥민이 SNS에서는 인종차별 피해를 봤다. 아이러니, 그 자체다.

 

 

◆맨유 팬의 충격적 행보 

 더욱 충격적인 것은 맨유의 팬들이 인종차별을 했다는 점이다. 맨유는 한국 축구 레전드 박지성(40)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활약한 구단이다. 박지성이 2021년 프로축구 K리그1 전북현대 어드바이저직을 수행하기 전까지 엠버서더로 활동했던 팀이다.

 

 또 맨유는 과거 중국인 공격수 동팡저우(36·은퇴), 일본인 미드필더 가가와 신지(32·PAOK)와 연을 맺기도 했다. EPL 내에서도 유달리 많은 아시아인 선수들과 동고동락했던 맨유의 팬들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인종차별을 하고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손흥민은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아닌 비겁한 선수가 됐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맨유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을 통해 손흥민이 쓰러진 장면에 대해 “파울이 불린 것을 보고 놀랐다. 속임수를 쓰면 안 된다”며 “만약 내 아들(SON)이 3분 동안 쓰러져있고 다른 동료들이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도와야 한다면 난 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부끄러운 행동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솔샤르 감독이 말한 아들은 손흥민의 영어 이름인 SON을 비유한 표현으로 손흥민이 과도한 행동을 해 카바니의 골이 취소됐다고 저격했다.

 

 토트넘과 EPL 사무국이 손흥민과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당 장면에 대한 정확한 설명과 팬들의 인종차별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내놓아야 할 때다.

 

 

wlsduq123@sportsworldi.com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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