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인턴’ 김응수 “나이 먹어 가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스타★톡톡]

[스포츠월드=정가영 기자] 이토록 찰떡같은 캐스팅이 또 있을까. ‘꼰대인턴’ 속 이만식(김응수)는 ‘꼰대’ 그 자체였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대사와 제스처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최악의 꼰대였지만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안방극장에 희로애락을 선물한 배우 김응수의 열연 덕에 ‘꼰대인턴’이 더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오늘(1일) 종영하는 MBC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은 최악의 꼰대부장을 부하직원으로 맞게 된 남자의 통쾌한 갑을 체인지 복수극을 그린 오피스 코미디 드라마. 김응수는 잘나가던 대기업 부장에서 하루아침에 희망퇴직을 당하고 경쟁사에 시니어인턴으로 재취업하며 과거의 인턴을 상사로 모셔야 하는 기막힌 갑을 역전의 주인공 이만식을 연기했다.

 

2월에 촬영을 시작해 마지막 촬영까지. ‘꼰대인턴’ 배우들과 스태프는 코로나 19라는 복병과 싸우며 일정을 완주했다. 종영을 앞두고 스포츠월드와 만난 김응수는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이 가장 감사하다”라고 입을 뗐다. 나아가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렇게 팀워크가 좋았던 적이 없다”며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촬영장에서는 모두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고. 눈물을 참느라 눈을 못 마주치고 제발 한 신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김응수는 지난 1월 신소라 작가, 남성우 감독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대본도 없이 ‘꼰대인턴’이란 제목만 가지고 삼자회동을 했다. 남 감독은 밥 먹는 내내 김응수를 훑어봤다. “두 분은 이미 작전을 짜고 왔던 것 같다. 이만식의 모습이 내게 있는지 몇 시간을 관찰하더라”면서 “두 사람의 인상이 너무 좋았다. 좋은 작품이 탄생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응수 역시 이만식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꼰대’의 모습을 찾았던 걸까. “꼰대 짓을 전혀 안 했는데”라며 껄껄 웃어 보인 김응수는 그렇게 ‘꼰대인턴’이 됐다.

“저는 1%도 꼰대가 아닙니다.”

 

첫 방송에 앞서 김응수는 “꼰대가 아닌데 꼰대 역할을 하려니 힘들다”라는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브라운관을 통해 만난 이만식은 너무나도 ‘꼰대’스러웠다. “머리 꼴이 그게 뭐냐”라며 이태리(한지은)의 머리를 싹둑 잘랐고,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이 모든 게 연기라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김응수는 “나는 ‘꼰’의 쌍기역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억울해했다.

 

“내 생각에 나는 권위라고는 없어요. 그런데 손종학 배우는 ‘이만식은 연기가 아니라 형님 그 자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보기는 많이 봤죠. 남자는 군대에 가서 수직적 구조를 경험합니다. 나 때는(웃음), 정말 나 때는 그랬어요. 괴롭히지 않는 고참이 되겠다고 맹세하고선 고참이 되면 바로 돌변하죠. 군 복무 시절을 생각하며 ‘꼰대’를 연기했어요. 경험의 부활이랄까요.”

 

환상 호흡을 펼친 박해진(가열찬 역), 깜짝 놀랄 반전을 선사한 한지은(이태리 역), 호형호제하던 박기웅(남궁준수 역) 등 젊은 배우들과의 케미스트리도 빛났다. 언제나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를 만든 김응수만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현장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김응수는 ‘바보’를 연기했다. ‘나를 낮추면 사람들이 마음을 연다’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농담을 건네고 웃음을 안겼다. 그러니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었다고 했다. 그는 스태프한테도 가장 인기가 좋은 배우였다고 자신했다. 스태프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고 불러줬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팀워크가 좋아야 더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요. 제가 무게 잡고 있으면 후배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현장에서 긴장감은 적이에요. 되도록 빨리 없애버려야 하죠. 박근형 선생님이 현장에서 그러셨어요. 제가 20대 때 선생님과 연극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계속 배우들과 스태프를 웃기더라고요.(웃음) 그러면서 무대에 나가면 연기로 객석을 뒤집어 놓으셨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런 멋진 배우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어요. 좋은 선배님의 영향인 것 같아요.”

누구나 꼰대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꼰대는 상대적’이라는 말도 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논리가, 누군가에겐 꼰대식 논리가 될 수도 있다. 다만 김응수는 “꼰대짓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연기할까 불안하기도 했다”라고 털어놨다. 꼰대가 되어보려 해도 그를 둘러싼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군대와 극단을 제외하고는 조직사회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꼰대는 인간의 속성이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 김응수는 ‘꼰대’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족 간에도 꼰대는 존재한다. 다섯 형제가 있다면 장남이 꼰대짓을 하기 마련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꼰대성이다. 

 

“인격수양을 해야 해요. 부하직원이 일을 못 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자신의 30대를 돌아보면 일을 잘했을까요.(웃음) 5분이면 될 일을 50분 동안 하는 매니저를 보면서 속이 터지기도 했죠. 그래도 참고 ‘잘한다, 천천히 하라’고 말해줘야 해요. 내가 수양하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에요. 부장이라면 그에 맞는 인격수양을 해야 합니다.”

 

절대로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김응수의 노력이다. 부모라고 해서 자녀의 일에 간섭하려 하거나,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의 일에 간섭하지도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번 맹세하는 김응수의 생활신조다. “후배의 연기가 아쉬워도 지적하지 않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답한 그는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다. 참 긍정적인 변화”라고 웃어 보였다. 

 

김응수는 지난해 영화 ‘타짜’ 속 “묻고 더블로 가!”라는 대사가 재조명받으며 ‘곽철용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약 30년간 쉬지 않고 배우의 길을 걸었던 그가 젊은 세대의 취향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나이 먹어 가는 게 너무 행복하다”라는 말에서 김응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젊었을 때는 그저 불안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지금의 젊은이들과 같은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젠 우주를 알고 인간을 알겠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젊은이들은 불안해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면서 “사는 게 별거 아니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젊었을 때 고민할 필요도 없었는데 싶다”라고 말했다.

처음 배우를 하던 시절 30만원의 연봉도 참고 견뎠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다. 서른넷의 나이까지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영화 한 편을 찍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덕에 서른다섯에 첫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다. 김응수는 “성공한 사람의 비결에는 특별한 게 없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비결이다. 

 

“내가 꿈을 버리고 포기하는 순간, 꿈도 나를 버리고 도망갑니다. 그러니 참는 수밖에 없죠. 만일 직장 상사가 괴롭힌다 해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참는 거겠죠. 꼰대 밑에 있는 게 싫다고 해서 퇴사한다면 월급도 포기해야 합니다. 돈은 주고 꼰대는 없는 직장 생활은 없는 거죠.”

 

배우 김응수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배움’이다. 중년을 넘어서면 돈벌이 외에 다른 관심사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배움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학생으로 돌아가 배우는 게 재밌다”는 그는 “무언가를 깨달으면 일주일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반복되는 배움 속에 즐거움을 얻는다. 배움은 다음 작품의 인물을 창조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배우는 평생 배워야 한다”는 말을 건넨다. 

 

중년이 되어 진정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중년 배우의 보기 드문 대세 행보에 책임감도 뒤따른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는 젊은이들만 주인공을 하는가’다. 김응수는 “할리우드의 경우 중년과 노년의 삶을 다룬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나온다. 중년은 그들 나름대로 감동 메시지가 있다. 그걸 그려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젊은 사람들과의 교감, 좋은 관계를 잘 그려낸 작품이 점차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아가 ‘멜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김응수는 “왜 중년 멜로는 없을까”라고 되물었다. 호화 생활을 하는 중년의 삶이 아니라 ‘제대로 된’ 중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꾸준히 탄생하길 소망하고 있다.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MBC 제공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