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라쓰’로 보여준 배우 이다윗의 변신 [스타★톡톡]

[스포츠월드=정가영 기자]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는 복수에 성공했다. ‘소신’을 내세운 그의 뒤에는 실전의 경험으로, 촘촘한 계획으로, 진한 의리로 함께한 친구들이 있었다. 배우 이다윗이 연기한 이호진도 굵직한 역할로 그의 성공을 도왔다. 

 

최근 종영한 ‘이태원 클라쓰’는 불합리한 세상 속, 고집과 객기로 뭉친 청춘들의 ‘힙’한 반란을 그린 작품이다. 세계를 압축해 놓은 듯한 이태원의 작은 거리에서 각자의 가치관으로 자유를 쫓는 그들의 창업 신화가 다이내믹하게 펼쳤다. 극 중 이다윗은 박새로이(박서준)의 절친이자 유능한 자산관리자 이호진으로 분했다. 대기업 장가와 단밤의 경쟁에 막중한 임무를 담당한 인물. 박새로이를 도와 지략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흔히 종영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시원섭섭하다”는 소감을 듣게 된다. 그러나 종영 후 스포츠월드와 만난 이다윗은 “보통은 시원섭섭하다, 후련하다는 말을 하는데 이번엔 시원함은 없고 아쉬움만 남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애정이 깃들어 있는 ‘이태원 클라쓰’. 헤어나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작품이다.

 

이호진은 ‘이태원 클라쓰’의 시작과 끝이었다. 박새로이(박서준)의 전학 첫날, 장근원(안보현)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하는 이호진을 목격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새로이가 있는 구치소에 찾아간 것이 학생 이호진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박새로이의 든든한 친구이자 자산관리사가 되어 돌아온다. 달라진 이호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도 많았다.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만화로 봤을 때는 인물의 성격이 확 느껴져요. 그런데 내가 직접 연기하려다 보니 또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최대한 매끄럽게 연기하고 싶었어요. 학생 때는 확실하게 ‘당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어요. 그게 이 드라마의 시발점이 되는 장면이니까요. 머리스타일부터 안경 등 외적인 모습도 최대한 튀지 않고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도록 했어요. 말투도 움츠러든 느낌을 주고자 했죠.”

쓰러진 이호진을 비웃듯 그의 머리에 우유를 쏟아붓는 장근원의 모습은 적나라한 학교폭력의 현실을 비췄다. 이 장면은 ‘우유를 붓는다’는 지문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디테일을 완성했다. 그는 “그렇게 우유가 흐를 줄은 몰랐다. 안경 안쪽으로 부어져 더 불쌍해 보이더라”면서 “(안보현이)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매 컷마다 미안하다고 했지만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호진은 180도 달라졌다. 세련된 수트에 지적인 모습이 느껴졌고, 굽었던 허리는 곧아졌다. 움츠러든 어깨는 당당하게 펴졌다. 처음 도전하는 이미지 변신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는 이다윗은 “지금껏 많은 작품을 했지만 이렇게 수트를 입고, 반듯한 머리스타일을 하는 분석적이고 냉철한 인물은 처음 맡아봤다. 내 안에 그런 이미지가 있을까, 어울리긴 할까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장근원과 마주한 이호진은 어딘지 모르게 작아졌다. 모두 그가 의도한 부분이었다. “작가님은 제가 당당하고 자신 있는 말투를 할 거라 예상하셨나 봐요.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도 그 부분이 고민이었어요. 만화에서는 가능하지만, 과연 현실에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외적인 모습 말고는 똑같은 목소리와 템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죠. 최대한 담백하고 편안하게 준비했어요.”

 

이호진이 장근원과 마주치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장근원을 향한 감정도 조금은 무뎌질 법했다. 박새로이의 숨겨진 주식 이야기, 장대희 회장을 무너뜨리기 위한 치밀한 작전 등 새로운 전개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호진의 과거는 무뎌지기엔 너무 커다란 상처였다.

 

“횡단보도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있잖아요. 장근원은 저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죠. 그래도 무서웠어요. 한 번 마주쳤는데 그때의 감정이 바로 올라왔어요. 복수심도 생겼죠. 그리고 나서 구치소에 있는 장근원을 찾아나니까 약간의 시원함은 있었어요. 동시에 울컥하는 마음도 생겼죠. ‘찡찡이?’라고 묻는데 그동안의 기억이 나면서 울컥하더라고요.”

 

이다윗은 현재 이태원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거주민이 본 ‘이태원’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극적 표현이 가미됐지만 진짜 이태원의 느낌이 담긴 작품”이라고 답했다. 4년 전에는 예산을 따지고 따져 고른 집이었지만, 이제는 이태원의 매력에 푹 빠졌다. 도심 속의 시골 같은 느낌, 가게 주인들은 대부분 20대 중후반의 젊은이들이다.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친근함이 묻어난다. 카페 사장 형, 밥집 누나, 금세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곤 한단다. 

‘이태원 클라쓰’는 첫 방송 이후 지속적인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렸고, 최종화 16.5%(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에게 ‘이태원 클라쓰’ 인기의 이유를 묻자 “드라마의 특성과 이야기 흐름이 시청자에게 다가간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트랜스포머’를 본 관객들이 지나가는 차를 보고 로봇이 변신할 것 같은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이태원 클라쓰’를 본 시청자들도 잠시나마 ‘새로이 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소신에 대가가 없는, 제 삶의 주체가 저인 게 당연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는 박새로이가 작품 속 인물만은 아니길 바라는 많은 이들의 희망이 시청률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단다. 

 

“박새로이를 보며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저 역시 그래요. 새로이처럼 살고 싶지만, 그러기엔 어려운 점이 많죠. 드라마지만, 이태원이라는 친숙한 배경이 주는 힘도 있고 내가 살아온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에요.”

 

그렇다면 인간 이다윗이 지키고자 하는 ‘소신’은 무엇일까. 그는 “거창한 소신은 없다”고 머쓱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곰곰이 생각에 잠긴 그는 “배우를 시작하며, 지금까지도 ‘연기만 잘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선배 연기자들을 보며 꿈꿔온 미래가 있다고. 존경하는 선배들을 보며 그들이 지금 내 나이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단다. 모든 걸 떠나 배우가 가장 잘 해야 하는 건 ‘연기’다. 앞으로도 더욱 잘하자고 하는 굳은 다짐이 마음에 가득 들어차 있다. 

 

2003년 KBS 드라마 ‘무인시대’로 데뷔해 어느덧 17년 차 배우가 된 이다윗. 지금 그에게 ‘연기’는 가장 행복한 일이다. 오랜 배우 생활 동안 연기의 매력을 넘볼만한 일은 찾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에게 ‘이태원 클라쓰’는 첫 시도를 하게 된 작품이다. 겉모습이 변하면 그에 따라 자세도 말투도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더 편하고 넓어진 느낌이라고. 끝으로 그는 “이제 범죄물도 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내놨다. 영화 ‘추격자’의 하정우처럼 분위기만으로도 자극적인 역할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소망했다.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리스펙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