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톡톡] ‘스토브리그’ 박소진 “완벽하지 않아도, 다르다는 게 매력이죠”

[스포츠월드=정가영 기자] 걸그룹 멤버에서 배우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누군가 늦었다고 바라볼 지도 모르지만 조급함은 저 편에 내려놨다. ‘스토브리그’로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배우 박소진이 차근차근 알아가고 있는 연기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지난 17일 종로구 한 카페에서 스포츠월드와 만난 박소진은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안에 있어 감사하다. 그 안에서 영채라는 이름을 기억해주시고, 좋은 분들을 만나 작품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현재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에 출연 중인 박소진은 2010년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로 데뷔했다. 배우라는 꿈을 가지고 나아가는 그는 지난해 4월 독립영화 ‘제비’를 통해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후 영화 ‘행복의 진수’, tvN D 웹드라마 ‘부릉부릉 천리마마트’에 출연하면서 ‘배우 박소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토브리그’라는 뜻깊은 작품을 만났다.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지난 14일 최고 19.1%(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놀라운 기록 속에 종영했다. 5.5%의 시청률로 출발한 ‘스토브리그’는 “스포츠 드라마는 흥행이 힘들다”라는 편견을 깨고 프로야구 프런트의 세계를 리얼하게 풀어내며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이신화 작가의 필력에 캐릭터와 혼연일체 된 배우들의 열연이 뒷받침돼 이룬 쾌거였다. 

 

‘스토브리그’에서 박소진은 욕망 있는 스포츠 아나운서 김영채를 연기했다. 취재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패기와 미모까지 겸비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김영채는 귀화한 투수 로버트 길(이용우)의 인터뷰를 악의적으로 편집해 드림즈에 먹구름을 몰고왔다. 병역 기피 논란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인 로버트 길의 입단 기자회견에서는 “지금이라도 군대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는 핵폭탄급 질문을 던져 시청자의 심장을 내려앉게 했다.

 

오디션으로 역할을 따낸 박소진은 다들 기자다운 느낌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관점을 비틀어 연기했다. 조금 더 캐주얼하고 툭툭 던지는 듯한 질문들이 더 ‘기자다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영채는 단순히 스포츠 아나운서가 아니라 저널리즘을 녹일 수 있는 캐릭터였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는 멋진 직업군이라는 점이 ‘김영채’를 욕심나게 했다. 

김영채는 초반 드림즈를 위기에 밀어 넣는 장본인이었다. 박소진은 “대사 자체가 센 것 뿐 미움받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그래서 (시청자의) 반응에 더 아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정말 이 정도 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전개가 쌓이다보니 적대감이 느껴졌을 수도 있다. 영채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싶은 사람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하지만, 옳고 그름을 분명히 따진다. 편을 들어줄 때는 확실히 하고 싶었지만,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중립적인 입장을 가져야 하니 다 드러낼 수 는 없었을 거다. 그런 점이 아쉽기도 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케미’의 소중함도 깨닫게 됐다. 모든 작업이 그렇지만 연기란 특히 그랬다. “프로그램 안에 갇힌 게 속상했다”는 그는 “이 좋은 선배들, 스태프 사이에서 조금 더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며 아쉬움을 거두지 못했다. 

 

김영채는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했다. 그러나 ‘김영채’라는 인물에 대한 서사가 풀리기 보다는 드림즈와 스토브리그를 중계하는 진행자에 초점이 맞춰져 어려움도 있었다. 박소진은 “영채는 TV 속 인물이었고, 영채의 이야기가 풀릴 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 그래서 중간 과정을 스스로 쌓아도 보고, 작가·감독님에게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댓글은 예상밖의 변수였다. 데뷔 이후로 쭉 댓글을 봐왔지만, 김영채를 연기한 이후에 쌓여가는 비난에 댓글을 멀리하게 됐다. 

“처음엔 날 욕하는 것 같아서 아팠어요. 극에 몰입된 시청자들의 악의적인 말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문득 지금이 최선이 아니고 이 이상이 없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처음부터 다 보여주고 모두에게 알릴 수 있겠어요. 그건 무리일 수도 있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댓글을 보지 않게 됐어요. 내 몫을 해내야 하는데 연기를 하면서 댓글이 떠오르더라고요. 방해가 될 것 같았어요.”

 

기분 좋은 시청 후기도 많았다. 야구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진짜 스포츠 아나운서 같다”며 세세한 포인트를 짚어줬다고. 아나운서들이 쓰는 특유의 발음을 익히려 했지만 그렇다보니 무거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 캐주얼하고 편하게 해도 된다는 조언이 있었고, 많은 시도 끝에 스포츠 아나운서 김영채가 탄생했다. 틈만 나면 뉴스 채널을 틀고 따라했봤다. MC를 보듯 진행투도 섞어보고 많은 시도를 했다. 그 가운데서도 주관을 뚜렷히 내세우는 건 잊지 않았고, 정확하지 않은 말의 흐름 들은 없애고자 특히 노력했다. 

“좋은 게 훨씬 많아요.”

 

가수에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 한 후 소진은 예전과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됐다. 지난 가수 활동을 돌아보면 걸그룹의 멤버로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야 했다. 소진은 “누가 정한건 아니지만 어떤 순간에도 예뻐야 하고, 이렇게 입어야 예쁘고, 이래야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완벽함’의 기준이 있었다”면서 “그게 완벽한 건지 잘 알지 못했지만 기준들은 정말 많았죠. 그래서인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자기애가 잘 안 생겼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연기를 하고자 마음먹고 나니 세상이 달라졌다.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않다 해도 잘 쓰일 수 있다는, 그게 멋진 매력일 수도 있다는 조언이 마음에 박혔기 때문이다. 그 이후엔 ‘주름이 생기면 뭐 어때, 예쁘고 멋있기만 한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의 가치를 누구보다 깊게 깨닫게 됐고, 그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걸그룹으로 데뷔했고, 남들보다 늦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조급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달라진 지금, 소진은 “모든 느림에 감사하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스물 아홉, 서른 살에 더 괴로워했다. 무언가 더 자리잡고 해결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더 빨리 성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는 그는 “그런 흑역사가 있었기에 더 오래 좋았다. 나이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배우를 하려다 보니 자신의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는 지 알 수 없었다. 평범한 사회 생활과 다른 삶을 살다보니 자연스레 ‘보통의 삶’과는 멀어졌다. 그래서 쉬는 동안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했고,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시는 아저씨까지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극을 시작하며 그 시선을 배울 수 있었다. “재밌었어요. 언젠가 다 극의 캐릭터처럼 쓰여지지 않을까요.”

 

배우로 본격적인 걸음을 시작한 박소진. 가수로 첫 발을 떼던 순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롤모델’을 찾는데 더 신중해졌다는 점이다. “신인 시절 롤모델을 물어보면 대답하지 말 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할 걸 그랬어요. 막상 대선배님들의 이름을 언급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알게됐거든요. ‘배우’라는 일도 아직 제겐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기 보다 ‘계속 알아가고 싶은 배우’가 되길 바래요. 모든 예술이 그런 것처럼 배우도 계속 달라지고 더 좋아질테니까요. 나 혼자 곧어있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죠.(웃음) 배우라는 꿈을 가지고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은지 보여준다면 좋은 파장을 가져올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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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눈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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