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기생충’ 송강호, 아카데미 캠페인의 이유는?

 영화 ‘기생충’의 미국배급사 네온 측에서 출연배우 송강호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홍보캠페인을 시작했다. ‘For Your Consideration’ 문구로 잘 알려진 캠페인이다. 아카데미상 투표권을 쥔 AMPAS(미국영화예술과학협회) 회원들 타깃으로 관련 광고를 이런저런 영화매체들에 실어 투표를 독려한다.

 

 그런데 네온 측 송강호 캠페인은 좀 특이하게 보일 수 있다. 송강호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 후보 가능성 측면에서 거의 거론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생충’ 자체가 그렇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여러 핵심적 상들에 유력후보로 점쳐지지만, 연기 측면에선 일종의 ‘앙상블 피스(Ensemble Piece)’로 여겨져 특정배우 한둘이 주목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거기다 미국언론 차원에선 개중 조여정에 대한 주목도가 높았다. 배역 자체도 독특하고 눈에 띄었지만, 이른바 ‘스타 서칭’ 차원에서 조여정 외모가 이목을 끈 점이 크다.

 

 그럼 이렇듯 ‘안 될 것 같은’ 캠페인을 왜 굳이 돈 들여 하고 있는 걸까. 쉽게 흘려 넘길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실 이 부분이 꽤나 중요하다. 한국영화가 그동안 단 한 번도 입성하지 못했다는 아카데미상 ‘본질’을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바로 ‘배우들이 결정짓는 상’으로서의 본질 말이다.

 

 미국 대중문화상 예측 사이트 골드 더비에서 나온 자료가 있다. 지난해 기준 아카데미상 투표 권한이 있는 AMPAS 회원들 ‘직종’ 분포를 알아낸 결과다. 참고로, AMPAS엔 영화평론가 등 미디어 인력이 가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영화업계 종사자로서 그 경력을 인정받은 ‘영화인’들만 가입 가능하다.

 

 결과를 살펴보면, 배우 1218명, 제작자 524명, 감독 512명, 영화사 간부 499명, 마케팅담당자 416명, 다큐멘터리 인력 320명, 무대미술 인력 308명, 영화음악가 305명, 편집자 298명, 촬영감독 246명, 메이크업 및 헤어스타일링 인력 183명, 의상 인력 128명, 캐스팅 감독 113명, 나머지 파악되지 않는 264명 등이다. 파악되지 않는 회원들은 대부분 음향이나 시각효과 등 기술직으로 추정된다.

 

 보다시피 ‘배우’ 직종이 압도적으로 수가 많다. 웬만한 수상결과 자체를 가로지를 수 있을 정도 최대 파이다. 그리고 이들에겐 연기상뿐 아니라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상 투표권한도 있다. 그러니 아카데미상 차원에서 배우들 마음에 안 드는 영화는 후보에도 못 오를 수 있고, 반대로 배우들이 열광하는 영화는 비평계 반응 등과는 관계없이 후보는 물론 수상까지 넘볼 수 있는 위치가 된단 얘기다.

 

 당연히 이들 배우 투표엔 특유의 속성이 따른다. ‘배우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영화’에 대해선 평가가 낮아진단 점이다. 배우들 연기가 아닌 영상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 감독 역량만이 돋보이는 영화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한편 누군가 특정배우가 이른바 ‘스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확 눈에 띄게 주목받지 못하고, 그저 여러 배우들 앙상블이 안정적으로 펼쳐진 영화에 대해서도 평가가 낮아진다. 의외지만, 그런 게 또 배우들 속성이기도 하다. 앙상블만이 잘 펼쳐졌을 경우, 이는 배우들 각자 역량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감독’이 배우들을 잘 지도하고 통제했단 인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생충’은 위 언급했듯, 앙상블 피스다. 배우들 중 누군가가 아카데미 연기상 개별후보로 거론된 적 자체가 없다. 이 같은 약점을 뉴욕타임즈 11월13일자 기사 ‘작품상 레이스가 시작됐다. 이들 중 한 편이 수상할 수 있을까’에서도 짚었다. 기사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크게 둘을 꼽았다. 먼저, 외국어영화(비영어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다는 점. 그리고 개별 연기상 후보로 오를 배우가 없다는 점. 후자의 경우, 역대 개별 연기상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단 점을 부연했다.

 

 확실히 그렇다. 애초 외국어영화가 외국어영화상(올해부턴 국제장편영화상으로 이름이 바뀐다) 외에 작품상 후보로 지명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실제 벌어지려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배우들 구미에 맞아야한다.

 

 대표적인 예가 1995년 작품상 후보 ‘일 포스티노’ 사례다. 아카데미상은 1973년 잉그마르 베리만의 ‘외침과 속삭임’ 이후 20년 넘게 외국어영화에 작품상 후보지명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이때가 미국선 이른바 ‘자문화 자가중독’ 시기로 여겨진다. 그러다 흐름을 깨고 22년 만에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일 포스티노’는 바로 주연배우 마시모 트로이시 연기가 크게 주목받은 영화였다. 특히 암이 발병해 촬영기간 내내 수술을 미루다 촬영종료 바로 다음날 혼수상태에 빠져 세상을 떠났단 일화가 배우들에게 많은 감명을 줬다. 그래서 사후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고, 덩달아 작품상 후보로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후로도 대부분 다 그렇다. 1998년 이탈리아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도 작품상 후보로 지명됐고, 그 배경엔 주연배우 로베르토 베니니의 명연기가 있었다. 영화는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로 올라 결국 베니니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후 작품상 후보에 오른 외국어영화 ‘아무르’도 ‘로마’도 모두 그렇다. 배우들 연기가 주목받아 연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 영화들이다. 대만의 ‘와호장룡’만이 예외인데, 사실 ‘와호장룡’마저도 장쯔이가 여우조연상 후보로 크게 지목받다가 지명에 실패한 경우다. ‘배우들이 역량을 발휘했다’는 콘셉트에선 벗어나지 않았던 셈이다.

 

 그래서 ‘기생충’도 송강호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봐야한다. 비록 연기상 후보로서 크게 거론되진 않지만, 어찌됐건 이 영화에서도 ‘배우들이 역량을 발휘했다’는 점을 투표권한을 가진 배우들에 알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선 조여정보다 송강호를 미는 편이 훨씬 유리했다. ‘기생충’ 한 편으로만 미국에 알려진 조여정에 비해, 송강호는 그간 ‘살인의 추억’, ‘괴물’, ‘박쥐’ 등으로 꾸준히 미국영화업계 및 영화마니아층, 특히 ‘배우’들에게 이름을 알려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서구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배우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익숙한’ 송강호가 선택돼 캠페인이 시작됐다 봐야한다. 비단 연기상 지명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투표권한 배우들로부터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부문 후보지명을 ‘방해’할 수 있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얼마 전 미국매체 벌쳐와의 인터뷰에서 “왜 그동안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지명도 받지 못한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아카데미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로컬’이니까”라고 답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에 ‘사이다’란 국내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엄밀히 3대 국제영화제도 그런 경향이 없다곤 말 못한다. 유럽서 열리는 ‘유럽영화제’ 측면이 강하다. 가장 대표적인 칸영화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 30년 간 공동수상 포함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32편 영화들 중 무려 19편이 유럽영화였다. 아시아권 영화가 수상한 건 6편뿐이다. 특히 유럽 특유의 반미(反美) 성향이 강해 미국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입장이 아니면 미국영화는 잘 뽑아주지 않는단 속성도 존재한다. ‘로컬’ 티를 많이 내는 것이다.

 

 결국 아카데미상의 가장 대표적 특성도 ‘로컬’이란 차원보단, 다른 영화상들과 달리, 엄밀히 ‘업계상’이자 ‘배우상’에 가깝단 점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할리우드 자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배우 중심 스타산업과 연동돼있듯, 가장 대표적인 영화상 역시 배우들이 주목받을 영화를 배우들 손으로 뽑게 하는 측면이 강하단 얘기다. 아카데미상은 ‘본래’ 그런 상이었다. 향후 국내 대(對)아카데미상 전략 역시 바로 이런 차원에서 재편돼야 할 필요도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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