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해외서 더 잘 나가는 에버글로우, ‘인기 역수입’ 가능성은?

지난 19일 걸그룹 에버글로우가 두 번째 싱글 ‘허쉬’를 발매했다. 타이틀곡 ‘아디오스’ 음원도 같은 날 오후 6시 공개됐다. 그런데 그 결과가 사뭇 이목을 끈다.

 

일단 음원실적 차원에서 ‘아디오스’는 지난 3월18일 발매된 데뷔 타이틀곡 ‘봉봉쇼콜라’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최대음원사이트 멜론 차트인엔 실패했다. 한편 피지컬 음반판매에선 뚜렷한 성장을 보인 게 맞다. 데뷔 싱글 대비 약 2배 초동판매량이 나왔다. 그러나 초동 1만 장대 이하에서 이 정도 팬덤 성장세는 웬만한 다른 신인 걸그룹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긍정적인 상황은 맞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아디오스’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다. 공개 3일 만에 3000만 뷰를 넘어섰다. 일주일을 채우고 나면 4000만 뷰도 넘어설 기세다. 지난 ‘봉봉쇼콜라’ 일주일째가 1400만 뷰였음을 돌이켜보면 거의 3배 성장이다. 사실 5개월 만에 3800만 뷰를 넘어선 ‘봉봉쇼콜라’부터도 데뷔 타이틀곡으로서 대단한 기록이었다. ‘프듀 그룹’도 ‘3대 기획사 그룹’도 아닌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걸 또 초반 3배 기세로 경신해버린 셈이다.

 

원인은 뭘까. 단순하다. 해외 K팝 팬덤 반향이다. 애초 공개 3개월 내 2000만 뷰 이상은 해외 팬덤 없이 이루기 힘든 수치다. 그런데 여기서 또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유튜브에서 드러나는 K팝 해외 팬덤이란 기본적으로 동남아시아 팬덤을 가리킨다. 개발도상국들이 몰려있어 실제 소비력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공짜’ 유튜브를 통해 존재감을 알리려들 한다.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이 중심이다. 그런데 에버글로우는 여기서 호응을 얻어 유튜브 성과를 내고 있는 그룹이 아니란 것이다.

 

지난 8월18일부터 23일까지 에버글로우의 유튜브 국가별 조회수에서 1위는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2위가 일본, 3위가 브라질이다. 그 아래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죽 늘어서다 8위까지 가서야 한국이 나온다. 비단 이번 싱글만도 아니다. ‘봉봉쇼콜라’ 때부터도 이랬다. 에버글로우 데뷔시점부터 ‘아디오스’ 등장 직전까지 유튜브 국가별 조회수에서도 1위는 똑같이 미국이었고, 그 뒤로 일본, 한국, 브라질 순이었다. 전반적으로 북미와 남미, 아메리카 대륙 전반에서 반응이 월등히 좋다.

 

특히 이번 2번째 싱글이 그렇다. 초동판매량 6300여장 중 1000장 가까운 물량이 해외구매 사이트 케이타운포유에서 집계되고 있다. 전체 1/6이 해외물량인 셈이다. 자연스럽게 위 유튜브 국가별 조회수와 연동되리라 가늠해볼 수 있다. 1위 미국, 2위 일본. 모두 실제 구매력을 충분히 갖춘 선진국들이다. 결론적으로 에버글로우는 국내 대비 해외 팬덤 규모가 ‘유난히 큰’ 팀이자, 그 해외 팬덤 중심이 미국에 꽂혀있는 매우 특이한 팀이란 얘기다.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심요소론 역시 음악적 방향성 외에 다른 것을 찾기 힘들다. 쉽게, 에버글로우 음악은 K팝적이라기보다 미국팝적 면면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훅’ 중심 멜로디 승부가 강한 K팝에 비해 강한 비트 중심이다. 곡 구성과 사운드 구현 차원에서도 좀 다르다. 대표적으로 EDM 베이스 후렴에서 보컬을 배제하고 허밍, 챈팅 정도만 삽입된 드롭으로 대체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나아가 전반적으로 각 보컬개성을 깎아내 사운드 요소 정도로 사용하려는 경향도 발견된다. 가창자인 아이돌 개개인 존재감을 강조하는 K팝에선 보기 힘든 방법론이다. 이밖에도 많다. 하다못해 수년째 미국팝 유행중심에 선 라틴팝의 ‘분위기’라도 내려는 의도마저 결국은 미국팝적 접근이라 볼만 하다.

 

시야를 넓혀보자. 이처럼 ‘미국 편중’ 인기구도를 보이는 또 다른 팀들에 대해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걸그룹 이달의소녀를 들 수 있다. 역시 지난해 공식 유튜브 채널 조회수 1위가 미국, 2위 한국, 3위 브라질로 나왔던 팀이다. 이달의소녀 역시 에버글로우처럼 미국팝적 경향을 보이는 측면도 강하지만, 또 다른 원인도 존재한다. 미국 서브컬쳐 마니아들이 특히 즐기는 ‘세계관’ 설정을 취한 팀이란 점이다. 세계관 설정은 수퍼히어로 만화와 페이퍼백 범죄소설부터 시작해 근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다크 유니버스, 몬스터버스, 컨저링 유니버스 등 할리우드로까지 가지를 뻗은 미국 서브컬쳐계 대표적 상업코드 중 하나다.

 

그리고 위 두 가지 ‘미국특화’ 콘셉트는 바로 K팝 미국진출 성공기 중심인 방탄소년단이 그대로 보유한 콘셉트이기도 하다. 결국 에버글로우와 이달의소녀 둘 다, 의도했건 아니건, 미국 서브컬쳐 마니아층에 주목받을 수 있는 코드들을 충실히 이행해오고 있었단 얘기다. 대신 그만큼 국내입지 확장세는 더딘 편이지만 말이다. 대단히 특이한 행보다.

 

어찌됐건 K팝산업에서 미국시장 중요성은 점점 커져가는 게 사실이다. 애초 미국은 일본, 중국에 이은 K팝 ‘넥스트 캐시카우’ 시장으로 꾸준히 지목받아온 실정이다. 방탄소년단이 그 가능성을 크게 열어줬다. 나아가 지금은 중국, 일본 등 기존 동북아시아 캐시카우 시장이 서로 간 정치경제적 갈등과 대립으로 늘 일촉즉발 분위기란 점을 몸소 깨달은 시점이다.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 캐시카우 시장이 절실하다. 시장규모로 보나 안정성으로 보나 미국밖에 답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에버글로우, 이달의소녀 등 ‘미국 편중’ 인기 팀들이 가리키는 현실은 자명하다. ‘한국서 떠야 해외서도 뜬다’는 기존 공식이 드디어 깨지고 있단 점이다. 애초 그런 공식은 한국이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유행을 선도하는 아시아권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다. 거리상으로나 문화적 이질성 차원에서나 시장 한 조각으로만 기능하는 미국, 유럽 등지에선 먹힐 리 없는 발상이다. 신규 K팝 팬층이 늘어갈수록 더 그렇다. 한국선 뭐가 인기 있는지에 대해 점점 더 관심을 잃어간다. 자신들과는 애초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한국서 떠야 해외서도 뜬다’는 공식을 무너뜨리는 시장 개발이야말로 K팝 외연을 확장시켜줄 유일한 방안이기도 하다. 한류건 뭐건 국내시장부터 잡아야한다는 강박 탓에 소모적 경쟁만 반복하는 사이 기존 헤게모니 기업권력들 힘만 강화되는 부작용이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고인 물’이 지배하는 동맥경화 시장으로 굳어갈 위험도 커진다. 국내에 맞는 팀이 있고, 일본, 미국 등에 맞는 팀이 또 따로 있어, 각자 목표를 향해 자유롭게 갈 길을 분산시키는 분위기. 바로 ‘할리우드식 세계전략’ 원형이다.

 

어찌됐건 방탄소년단부터 시작해 에버글로우, 이달의소녀 등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미국시장서 이목을 끌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는 이제 어느 정도 쌓인 시점이다. 지금 남은 과제는, 유튜브나 아이튠즈 정도로만 파악되는 미국과 유럽 등지 인기를 실제 수익으로 돌려줄 갖가지 상업적 아이디어들의 개발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K팝의 다음 단계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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