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칸의 ‘대중친화적’ 변신…‘기생충’은 시작일 뿐이다

어딜 가든 ‘기생충’ 얘기뿐이다. 극장가 싹쓸이를 넘어 일종의 문화현상이 돼가고 있다. 개봉 사흘 만에 관객 237만2901명을 동원했다. 향후 ‘1000만 영화’도 가능한 페이스다. 온갖 미디어를 관련 소식들로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물론이다. 문화섹션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섹션까지 온통 ‘기생충’이다.

 

이처럼 드문 현상을 일으킨 동력은 당연히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 볼 수밖에 없다. 확실히 대단한 성과는 맞다. 칸뿐 아니라 영화상 자체의 위상과 영향력이 21세기 들어 크게 떨어지곤 있어도, 어찌됐건 그 영화상들 중에선 최대이자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문턱이 가장 높다. 그리고 한국선 그 상을 받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최소한 한국관객 입장에서 그 홍보효과가 어마어마하리란 점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이 정도 상업적 성과를 동반한 일대 현상이 일진 않는다. 예컨대, 지난 2012년 칸 다음쯤 위상으로 알려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을 땐 분명 이 정도가 아니었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한 첫 사례였는데도 그렇다. 미디어는 한동안 떠들썩했지만 이 정도로 전 방위적이진 않았고, 관객 반응 차원에선 기존 김기덕 영화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총관객수 60만3283명. ‘기생충’이 토요일 하루 동안 끌어 모은 관객의 절반 수준이다.

 

결국 지금 같은 ‘기생충 현상’ 다른 한 축은 이것이 ‘봉준호 영화’이기 때문도 크단 얘기다. 20년 가깝게 꾸준히 작가적 개성과 상업적 어필을 겸비하며 대중에 신뢰감을 줘온 감독의 신작이란 점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점에서 좀 다른 부분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칸국제영화제의 ‘변신’에 대한 부분이다.

 

사실 ‘기생충’은 시상식 직전까지만 해도 대략 2등상 격 심사위원대상 정도로 예상됐었다. 황금종려상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감독의 ‘고통과 영광’, 셀린 시아마 감독의 ‘불타는 여인의 초상’ 중 한 편으로 점쳐졌다. 전자가 한 번도 황금종려상을 못 타본 거장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면, 후자는 근래 가장 핫한 ‘여성에 의한 여성영화’이자 퀴어영화란 점이 부각됐다. 둘 다 칸 본래 성격에도 잘 부합한단 평가였다.

 

그럼에도 결국 두 편은 각각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에 그치고 황금종려상은 ‘기생충’에 돌아갔다. 이에 의외란 반응들이 많았다.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진단 의미가 아니었다. 어찌됐건 비평계 반응으론 이번 칸 경쟁부문 라인업 중 ‘빅3’ 안에 들어가는 영화다. 다만 영화 ‘성격’이 칸과 잘 맞지 않는단 설명이었다. 그럼 그게 어떤 ‘성격’일까. 영화상 예측 사이트 어워즈데일리의 유럽영화제 특파원 수쥬오닝이 한 문장으로 줄여 들려준다.

 

“(‘기생충’은) 비록 전형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처럼 보이진 않지만, 영화제용 영화라 해서 대중적이어선 안 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바로 이 부분이 칸국제영화제의 달라지는 분위기를 짚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칸은 점점 ‘대중친화적’으로 변신하려 하고 있단 점이다. 이유도 단순하게 예상해볼 수 있다. 이전처럼 예술본위적 영화들만 평가해주는 식으론 안 그래도 점차 떨어져가는 영화상 자체 영향력에 더더욱 찬물을 끼얹게 된단 판단 말이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그랬다. 황금종려상은 경쟁부문에서 호평 받은 영화들 중 가장 대중친화적인 일본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에 돌아갔다. 그리고 그 효과는 상당했다. 황금종려상 권위와 영화 자체의 대중친화적 성격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켰다. 본국 일본에선 개봉기간 동안 45억5000만 엔을 벌어들이며 2018년 통산 일본실사영화 흥행 2위를 차지했다. 한편 해외에서도 효과는 그대로 나타났다. 예컨대 일본영화가 딱히 환영받지 못하는 중국서도 ‘어느 가족’은 9600만 위안을 벌어들여 일본영화 역대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리고 이 같은 흐름은 현재 한국의 ‘기생충 현상’으로 연결되고 있다.

 

결국 칸국제영화제도 현실을 인식하고 입장을 180도 전환하고 있단 얘기다. 칸의 영향력으로 숨어있던 영화를 끌어올리고 흐름을 전환시키는 역할은 이제 거의 끝나간다. 그러니 이젠 정반대로, 이미 대중적 매력을 보유한 영화에 얼마 남지 않은 권위로 힘을 실어주면서 일종의 편승(?)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 대중적 시각에서 ‘좋은 영화’를 선정해 상을 얹어주며 대중의 신뢰와 권위, 명성을 다시 찾아오자는 전략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전환은 집행위 측에서 경쟁부문 진출작 구성과 심사위원 선정 등으로 충분히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비단 칸국제영화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 영화 장르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중문화 어느 장르건 막강한 권위의 특정집단이 전체 대중이 ‘생각하는 방식’을 끌어가는 일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란 정보 및 콘텐츠 창고가 열리면서 가속화된 현상이다. 배급개념을 무너뜨린 인터넷창고에서 각자 취향대로 자유롭게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톱다운 식 트렌드 선도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무엇이 좋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대중 각자의 고유한 영역으로 넘어갔다.

 

결국 칸국제영화제의 ‘변신’은 이제 시작일 뿐이란 얘기다. 나아가 칸의 변신은 곧 여타 국제영화제들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향후 점점 더 대중 취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예술본위적 콘텐츠는 보다 제한된 영역에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흐름 하에서라면, 향후 한국영화는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점점 더 주목받기 쉬운 분위기가 된다.

 

애초 한국영화는 대중성을 기반으로 성립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아트하우스용 영화시장은 극단적으로 좁고 부실한 대신, 아트하우스 영화들의 예리하고 도발적인 면면들을 대중영화가 흡수한 형태다. 흔히 ‘작가주의적 상업영화’라 불린다. 특유의 개성과 날카로운 접근을 보유한 상업적 장르영화들 말이다.

 

돌이켜보면 한국대중문화계 전체가 그런 분위기다. 예컨대 대중음악계도 상황이 거의 같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시장은 사실상 초토화 분위기지만, 언더그라운드적 경향과 감수성을 범용상품 아이돌이 흡수해 시장 중심을 장악한 상황이다. 일종의 ‘경계상품’이다. 그리고 그런 경계상품의 아슬아슬한 매력이 현재 세계에서 주목받으며 뻗어나가고 있다. 예술본위적 콘텐츠와 대중용 콘텐츠의 간극이 상대적으로 큰 해외시장에서 봤을 땐 상당히 독특하고 전향적인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칸국제영화제가 세계영화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던 땐 1970년대라 볼 수 있다. 칸 수상이 실제 대중적 홍보도구로 크게 작동했다. 그런데 동시에 1970년대는 현재 한국영화계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할리우드가 칸을 장악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10년 동안 무려 6번이나 미국영화가 황금종려상을 가져갔다. 그중 ‘야전병원 매쉬’ ‘택시 드라이버’ ‘지옥의 묵시록’ 등은 기대대로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하며 세계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에 따라 칸의 위상과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동반상승한 건 자명한 일이다.

 

‘기생충’의 만장일치 황금종려상은 그런 흐름이 칸국제영화제 측 ‘필요’에 의해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신호탄일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한국영화가 이 같은 종류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승승장구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함께 실어준다. 한국서 가장 잘 하는 작업, ‘작가주의적 상업영화’가 주목받고 평가받는 시대의 개막이다. 이런 흐름이 과연 산업적 차원에서 어떤 결과로 드러나게 될 진 알 수 없지만, 아직 불타지 않은 마지막 한류, 영화 한류는 그렇게 좀 더 흥미로운 2020년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됐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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