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방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이 서유럽을 휩쓸던 1940년대 초 독일군에 저항하던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이자 학자였던 마르크 블로크(1886∼1944)가 남긴 말이다.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기도 했던 블로크는 역사가의 역할, 나아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20세기의 대표적 민족주의 역사학자였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공격하자 그는 6명의 자녀를 둔 53세의 가장임에도 프랑스군에 자원입대했으며 프랑스가 항복하자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다가 게슈타포에 붙잡혀 1944년 6월 16일 총살당했다.

독일군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도 블로크는 “왜 우리가 패했는가?”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론을 ‘이상한 패배:1940년의 증언’이란 책으로 남겼다. 사실상 유서나 다름없었던 이 책에서 블로크는 독일군의 전격전으로 프랑스 전 국토가 짓밟힌 굴욕의 모든 것을 눈물과 피로 써내려가면서 프랑스 군부의 무능함과 경직성, 변화에 대한 거부와 시민사회의 이기적인 안보불감증, 정치권의 오락가락 행보 등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 변화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국가는 망한다

블로크는 전쟁개념을 일신했던 나폴레옹의 후손이자 당시 세계 1위 육군국을 자랑하던 프랑스가 독일에 허무하게 패한 이유를 ‘변화에 따른 충격과 나약함’에서 찾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이 기계화부대와 공군력이 결합한 ‘전격전’ 개념을 발전시키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지만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의 승리에 안주하며 변화를 거부했다.

그 결과는 1940년 전쟁에서 참담한 패배로 드러났다. 전장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프랑스군 지휘부는 1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그대로 적용해 어처구니 없는 패배를 자초했다. 한 장군은 사령부로 쓸 거점에 도착해보니 독일군이 자신을 마중나오기도 했다. 어떤 장군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독일군에게 체포됐다. 한 연락장교는 어느 날 길에서 전차부대를 만났다. 전선과 반대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생각해 알려주려고 했을 때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조심해, 독일군이다!”

블로크는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한 지휘부와 부실한 보급, 관료주의적 결함과 실패한 부대위치 선정, 오류가 개선되지 않는 경직성, 비효율적인 동맹국과의 협조체계, 출세를 위해 직언을 하지 않는 군 내부 분위기 등 독일군과의 전쟁과 맞먹는 내부에서의 전쟁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블로크는 프랑스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태도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쟁 전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군사력 증강에 대해 일관성없는 태도를 취했다. 국방예산 삭감을 외치다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공화파 지원을 위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부르주아들은 어떤 선택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했다.

전쟁 초기 프랑스 시민사회는 전쟁에 대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다 독일군이 질풍같은 속도로 프랑스 본토로 밀려들자 공포에 질린 시민사회는 싸울 의지를 잃었다. 프랑스의 도시들은 모두 비무장도시를 선포하며 독일군에 항복했다. 자신들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전선을 사수하고 있던 군인들의 등 뒤에 칼을 꽂은 것이다. 중앙정부가 동원령을 내렸지만 이를 이행해야 할 지방 공무원들은 도주했다. 기업가들은 공장을 폐쇄하고 돈을 빼돌렸으며 노동자들은 군수물자 생산을 못하게 연장을 숨겨버렸다. 이같은 상황에서 패전은 예견된 것이었다.

◆ 우리는 싸워 이길 준비가 되어있나

블로크의 비판적 시각은 23일 을지훈련의 일환으로 실시된 민방위의 날 민방공훈련에서 상당수의 시민들이 훈련에 협조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다시 한번 살펴봐야할 부분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23일 오후 2시 전국에서 민방공 훈련이 실시됐지만 대피하지 않은 채 갈 길을 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안내를 맡아야 할 공무원들은 멀뚱멀뚱 서 있기도 했고, 훈련을 귀찮게 여긴 시민들은 대피 상황인데도 길을 걸었다. 도로에서는 차량들이 훈련 상황임에도 아랑곳없이 운행을 계속했다. 

거리에 공습 경보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지만 소귀에 경읽기나 마찬가지였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날 정부서울청사 종합상황실을 방문해 민방공 대피훈련을 참관하면서 “안보불안이 상시화, 고도화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익숙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안보불안에 둔감해지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더 큰 위험을 우리가 스스로 불러오는 꼴”이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정치권도 시민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도발을 지속하고 있지만 정치적 지지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구호만 남발할 뿐 실질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6일 미국의 전술핵을 주한미군에 재배치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여론몰이에 나섰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는데 명분을 상실한다”며 부정적인 자세다.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면서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하자는 주장은 언뜻 봐도 모순적이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스스로 폐기하는 상황에서 6자회담 등 북핵 해결책이 동력을 얻을 수도 없다. 체계적인 정책발굴로 북한 핵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역량 강화를 지원해야 할 정치권의 태도를 적절치 않다는 평가다.

정부는 어떤가. 국방개혁을 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새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음에도 국방개혁의 청사진조차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외치지만 우리측의 남북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의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대화의 동력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북한이 화성-12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괌을 포위사격하겠다고 위협하자 미국과 북한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은 안된다”는 외침뿐이었다.

북한 도발 위협에 대응해야 할 군도 문제가 심각하다. 한 부대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소대장은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중대장은 대대장에게 보고한다. 대대장은 대대 의무대에서 치료받게 했으나 차도가 없자 연대 의무대로 보냈다. 연대 의무대에서는 위중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사단 의무대로 보낸다. 사단 의무대에서는 군병원으로 다시 보냈으나 환자는 사망했다. 그런데 환자가 있던 부대에서 수㎞ 떨어진 곳에 있는 민간 종합병원으로 바로 이송했으면 어땠을까. 규정을 지켰는데 결과는 좋지 않게 나온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군이 안고 있는 문제다. 정권의 변화에 관계없이 불어닥치는 방위사업 비리 수사로 전력증강 및 유지 업무를 담당하는 군인과 공무원들은 규정을 교조적으로 해석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내가 맡은 일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식의 업무자세가 유지되다보니 무기도입 사업 절차를 밟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한없이 길어진다. 사업 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해 정책적 측면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려 해도 후환이 두려우니 쉽게 움직이기 어렵다. 규정 준수라는 측면에서는 적절하지만 전장 환경 변화에 대응할 무기가 당장 필요한 일선 부대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일이다.

정책결정과정이 늘어지면 관료주의의 폐해가 그만큼 커진다. 이는 사업 진행 소요시간을 급속히 증가시킨다. 결국 무기를 군에 납품해도 그 무기는 전장환경에 뒤떨어진 무기가 된다. 초기 계획대로라면 이미 모습을 드러냈어야 했던 한국형전투기(KF-X)는 이제야 개발에 들어가면서 15년여의 시간을 허비했다. 차륜형장갑차와 소형전술차량도 선진국에서는 10~20년전부터 개발해 운용중이지만 우리 군은 이제야 일선 배치가 진행중이다. 정찰위성을 개발하는 425사업은 위성통제권을 놓고 국방부와 국정원 등 관련부처간의 이견으로 4년 가까이사업 착수가 지연됐다.

군 조직이나 전략은 어떤가. 드론에서 폭탄을 떨어뜨리고 레이저무기가 현실화되는 전장환경 속에서도 휴전선 일대는 6.25 당시의 진지전 개념에 따라 부대들이 서로 손잡듯 이어져있는 부대배치를 고수하고 있다.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하고 포격을 가하는 등 기존의 공비침투와는 다른 ‘창조도발’을 감행하며 우리측을 뒤흔들지만, 우리 군은 미군 전략자산 전개나 말폭탄 등 판에 박힌 대응만 되풀이한다. 

블로크가 비탄에 빠져 프랑스의 패배 원인을 찾고 또 찾은 지 10여년 후, 6.25에 참전한 프랑스군 대대는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대승을 거두며 프랑스군의 용맹함을 만방에 과시했다. 전원 지원자로 구성된 프랑스군 부대를 지휘한 몽클라르 중령은 이 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장군 계급을 포기하고 중령의 지위를 기꺼이 선택했다.

우리 군은 어떨까. 지금 당장 북한과 전쟁이 벌어져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까. 총력전 개념이 자리잡은 지 100년이 넘었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수십년째 이어져오고 있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거니는 한국에서 전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군, 미군 합동성의 원천인 골드워터-니콜스법을 초당적 협력으로 만들어낸 미국 정치권처럼 국방의 변혁을 주도할 수 있는 정책발굴을 도외시하고 정치적 수사만 남발하는 정치권의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물리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고 보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전쟁은 철저히 준비하거나 과거의 과오에서 교훈을 얻은 자에게 승리의 영광과 명예를 안겨주는 냉정한 존재다. 

세계일보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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